취업과 창업 사이에서 ‘개인주의’를 외치다

by 2016-02-01

   2006년. 스무 살 때 친구에게 들었던 “공무원 되려고”는 굉장히 신선했다. 5급을 희망하던 친구였는데, ‘고시’라는 인생 일대의 ‘도전’의 이미지가 섞이기도 했고, 그냥 벌써부터 뭐가 되려는 마음이 확고하다는 것이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난 대학이란 염원에서 겨우 내려와 한 숨 쉬어가고 있었다. 그 친구, 지금 취준생이다.

   나는 진로가 학습된다는 것을 몰랐다. 방목식 가정교육 탓도 있었고, 전문직과 공무원이 짱이라는 것을 지금도 외면하니 애초에 난 배움이 적성에 안 맞았나 보다. 만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늘어날수록 확실해졌다. 전문직이 더 어렵고, 공무원에도 급수가 있을 뿐 다를 건 없었다. ‘안정’이 짱. “어른들 말씀 중에 틀리는 거 없다.”

   민주화가 있었고, IMF가 있었고, 부동산이 있어왔다고 보고 들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인생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일어났던 격동들은 ‘안정 제일주의’ ‘나부터 안정되니즘’을 창궐했고, 우리까지 세습됐다. 교수에서 사업가, 서민에서 극빈자들까지 다름이 없다. 결과와 상관없이 안정되지 못했던 과정적 삶의 투영인 것을 뭐라 할 수도 없다.

   “틀림 없다”에 찍혀 눌려 세상이 ‘틀리지 않으려는 아이들’로 가득 찬 지 오래다. 그 사이를 비집고 ‘틀리지 않는 법’을 가르치던 이들이 대기업이 됐으니 말 다했다. 5지선다도, 주관식 단답형도 아닌, 채점도 불가능한 난제인 게 세상인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는 없고 피하려는 이들만 있다. 당연히 피할 곳은 한정돼있고, 피하다가 피 터지고 다수가 나락 행이다.

   그 나락의 바닥에 비정규직 일용직 문제부터, 우리 세대가 당면한 일자리 총량 부족, 부동산, 출산과 양육 문제, 신성장 동력 부재까지 뭐하나 쉽지 않은 꼬인 실타래지만,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매듭은 ‘일자리 창출’과 ‘취업난 해소’. 현 정부도 그렇게 짚은 것 같다. 창조경제가 제대로 헛다리지만.

   지금에야 나를 천상 글쟁이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난 군대를 다녀와 2009년부터 창조, 창업, 청년 키워드 난발 현장에 꾸준히 있었다. 제안서도 수 없이 써봤고, 정부 지원사업도 유치해봤다. 명확히 요약하자면 그 자리에 돈은 있는데 ‘공무원 되고 싶은’ 만큼의 열정 총량이 없다.

   스펙이 늘어나거나, 나랏돈을 밥줄로 삼는 중소기업의 생명이 연장된다. 창조는 바라지도 않는다. 애초에 10억에 유투브를 만들겠다는 관료주의에 창조가 어불성설이고, 안정제일주의 2세대들에게 창업으로 호소하는 게 넌센스였다. 심지어 창업 제안서 대필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창업 학원도 번성 중이다. 대학만을 바라보는 공교육은 사교육을 키웠고, ‘기업가 정신’ 없는 창업 지원은 신 개념 학원사업들만 창조중이다.

   급격히 고령화되는 사회에 역동성을 부여하려면, 줄어가는 젊은이들의 에너지 총량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창조’만 강조하는 공허한 외침들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미 가진 어른들의 부동산과 금융자산, 비즈니스 모델들은 어차피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 한정된 파이 속에서 우리 세대가 추구할 수 있는 ‘안정’은 ‘제 살 깎아먹기’ 혹은 ‘부모 살 깎아먹기’다. 쌓여가는 문제들이 코끼리인 거 다들 알면서, 하나 같이 장님 코스프레 중이다.

   (명문) 대학 입시, (안정된) 취업, 사회 전반에 만연한 “얼마나 틀리지 않고 살아왔는가?” 의 기준으로는 뭐가 나아질라나. 미안하지만 애초에 문제부터 틀려먹었다. 오답을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일에 세대 전반의 에너지가 투입돼야만 뭔가를 창조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창조경제는 앙꼬 없는 찐빵, 실체 없는 정치요, 에너지 없는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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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를 나와도 취업이 안 된다.”

   최근 SNS상에서 큰 파급력을 가졌던 이 얘기는 많은 부분을 외면한다. 예체능 학생들과 지방 학생들의 눈물은 주목 받을 가치조차 없는 게 현실이며, 그 어디에서도 실질적인 돌파구를 제안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 다들 뭔가 열심히들 산다. 토익에 열정페이에, 그놈의 학원, 학원, 학원. 학원 없이 뭔가를 성취해본 적이 없다. 취업 박람회에 취업 스터디, 온갖 취업 장사꾼들이 힐링멘토들과 함께 세뇌시켜 외면해온 우리의 현실을,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인지해야만 한다.

   인문계 4년제 대학졸업생 기준으로 보자면, 교육부가 발표한 현재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이 47.8%, 사회계열은 53.7%, 교육계열은 47.5%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대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이 42.3%다. 어느 대학을 나왔던 간에 두 명중에 한 명이 취업이 안 된다는 얘기인데, ‘대학원 진학자’ ‘자발적 졸업 연기자’ 다 빼고 치는 얘기다. 아마 IMF를 겪었던 90년대 선배들과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한 다리 위 선배들한테 “우리 때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였다.” “노력하면 다 된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한 마디로 ‘태도’와 ‘인식’ 그리고 ‘노력’에 대해서 다 같이 쓴 소리 좀 듣고, 토익 점수라도 좀 높이고, 공모전이나 인턴이라도 한 번 더 하면서, 때로는 반성과 자위로 학자금 대출에 빚을 얹어가면서까지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다. 물론 각자의 기준으로.

   그런데 이는 취업 시장의 현실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토익 학원, 취업 학원, 심지어 면접 스피킹 학원 등은 우리의 돈에 관심이 많으나, 상황에는 무관심하며, 우리가 처한 상황은 선배들의 과거와 다르다. 우리를 받아줄 시장 상황의 개선을 차치하고라도 우리의 ‘노력’이 과연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줄 수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 스마트 시대의 양면성

   중학교 때 폴더폰으로 문자를 두드렸고, 고등학교 때 사진기인듯 핸드폰인듯 복합적인 무언가로 셀카를 찍어대던 우리는, 대학교에 들어와 스마트폰으로 인생 전반을 소비했다. 뭐 약간의 편차들은 있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급속도로 변화해온 우리의 생활만치나 세상 모든 것들이 소리소문 없이 기술 기반으로 융합되어왔다. 음식점 매장 하나를 관리하더라도 소셜 마케팅과 고객관리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고, 은행원이 되더라도 고객정보 관리와 Fintech의 위협 및 기회를 파악해야 한다.

   세상은 핸드폰에서 TV를 건너 냉장고까지 스마트해졌는데, 고등학교 때 이미 다수가 수학을 포기했던 우리는 얼마나 기술적으로 스마트해졌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산업이 서로 연결되고 있으며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산업은 융합형 인재를 원하고, 산업 전반의 뿌리가 제조업에 기반하며, ‘기업의 인문학 열풍’은 ‘인문학 소양을 지닌 이공계 인재’로 해석하면 된다. 이건 이공계 나온다고 8차선 고속도로 아니라는 얘기기도 하고.

– 취준인듯 스펙인듯 ‘가만있는’

   그런 의미에서 보편의 우리는 그냥 망한 건가? 그건 아니다. 아무리 산업이 융합되어도 각자가 경쟁우위를 기반으로 차지할 직무는 존재하고, 좁디 좁은 자리일지라도 결국 경쟁은 끼리끼리다. 전문 자격증 코스를 제외하고선. 다만,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힘들고 고된 ‘취준’으로 이룩한 ‘학점’이나 ‘영어점수’며 ‘시사상식’이 아니다. 그건 딱 서류까지다. ‘효율성’에 기반한 서류전형 탈락에는 억울할 수 있지만, 인적성과 면접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수년 전 손주은 선생은 ‘학력’은 ‘유전자’가 결정한다 했지만, ‘취업’은 ‘산업적 소양’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서 날고 기었더라도, ‘취준’인듯 ‘스펙’인듯 ‘가만히’있던 우리는, 산업에 진출함에 있어 ‘덕력’인듯 ‘매력’인듯 ‘경력’같은 이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 가치를 시장 기준으로 판단해야

   고용은 철저히 시장이다. SKY 졸업생만 수만인 이 시점에서, 그 어떤 기업도 당장에 비즈니스에 투입할 가치가 없는 인력을 원하지 않는다. 그건 대기업도 마찬가지고,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이라고 대기업 못 들어간 우리의 학벌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직무를 지원하든 간에, “중경외시/토익 900/ 학점 3.8 취업 가능한가요?” 이딴 소리나 하고 있는다면, 철저히 취업 학원시장의 호갱님이 될 뿐이다.

   토익을 공부하더라도 실제 비즈니스상에서 어떤 식의 영어가 오갈지를 항시 생각했어야 했고, 시사 상식을 공부하더라도 산업적 지식으로 사유했어야 한다. 끼리 끼리 모여 떠드는 스터디는 딱 평균 수준의 발전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페이스북을 하더라도, 힐링힐링 가능가능할 시간에, 산업에 대한 소견을 표출하는 이들을 팔로잉하면서 정보를 생각으로 사유하고, 글이라도 한 줄 써가면서 혼재하는 지식들을 각자의 지력으로 길러냈어야 했다.

   결국 모든 시간의 소비가치를 ‘산업적 소양’에 고정하고, 영어건, 공모전이건, 하다못해 아르바이트건 시장 기반의 가치 창출을 이뤘어야 했다. 그 흔한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프랜차이즈 산업을 이해하려 한 이와, 가판대에서 화장품 하나를 팔더라도 약산성 제품의 특성을 공부한 이들만이 취업의 가능성을 높여나갈 수 있다.

– 지옥이 찾아왔다면, 지옥행 열차에 티켓이라도 팔아야

   이 말도 안 되는 취업경쟁에서, 보편적인 이들에게 처해진 ‘환경에 의한 강제적 어려움’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있다. 그 목적을 ‘공무원’ 아니면 ‘대기업’으로 설정한다면 더더욱.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지옥이 찾아왔다면 지옥행 열차 티켓라도 팔아야 살아남을 것 아닌가.

   심지어 취업을 한들, 평생을 가치 창출을 향해 살아가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를 은퇴시점에서도 개개인이 시장에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개인사업자’가 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설계해야 한다. 우리 부모세대도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았었고, 퇴직금과 주택담보대출을 도박 자금처럼 쓴 자영업이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이 어른들의 현실이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 시장에 기반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1년 이상 최선을 다해 준비했음에도 미래가 ‘노답’이라 판단된다면 알아서 해외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탈출 안내방송 같은 거 안 나온다. 그리고 해외에 나갈라 해도 간호사 자격증을 따든지 미장기술을 익히든지 해야 한다. 가만히 있는다면 가라앉을 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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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창업’이 수 많은 청년들의 어깨에 짐 지워졌다.

   대학이 전부인줄 알고 수능만 팠는데, 평생 생각도 안 해본 창업을 취업의 대안으로 판단하고 발걸음을 내딛는 대학생들이 늘어났다. 나는 나름 모바일 창업 1세대로 IT 창업 바닥에서 굴러온 입장에서, 쉽사리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아니 까놓고 부정적이다. 특히나 ‘잡스가 되어라’ 류의 ‘맥락’도 없고 ‘안내’도 안 되는 ‘종교’ 같은 메시지들을 듣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진다. 그 메시지에 수 년을 날려먹은 사람이 바로 나다.

– 열정으로 도전하라?

   ‘열정’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유는 창출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거나 CEO가 되고 싶은 우리의 열정은 사실 1원의 시장 가치가 없다. 창업은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도떼기 바자회도 아니고, 유구한 역사를 지니는 졸라게 까다로운 소비 시장에 당장 팔 수 있는 무언가를 검증 받는 과정이다. 그것도 졸라 빨리.

   우리가 열정이 없고 열심히 안 살아서가 아니라, 살아온 열정의 상품가치를 따져야 한다. 시장은 평생 사기만 쳐온 넘이나, 땅만 파온 넘의 도굴사업에는 투자할지라도 공부만 해온 우리에게는 제대로 피드백도 안 준다. “차라리 과외를 하라고”

–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보라?

   페이스북을 보며 주커버그를 꿈꿨다면 일단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그 인간이 얼마나 전우주적 천재인지를 살펴봐야 하고, 힐링캠프를 보고 백종원씨를 꿈꿨다면 여자친구 말고 돈 빌려준 친구한테 만든 음식을 보여줘야 한다. 그 다음에 물어봐야 한다. “이걸로 빌려준 돈 퉁 칠 수 있냐”고. 유투브를 10억에 만들겠다는 촌극이 벌어진 이유는 수 조원의 가치를 지니는 트래픽 관리 역량, 세계 최고급 개발자들이 달라붙은 집단 지성, 수 많은 잘난 두뇌들을 조화시켜 끌어나가는 리더쉽 및 이면의 기업관이나 경영 철학을 모두 쌩깠기 때문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시간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거인의 성장 과정과 식이요법, 체력 관리, 두뇌 구조는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의 가치를 검증 받고 싶다면 그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수 밖에 없다.

– 아이디어로 승부하라?

   ‘아이디어’를 믿고 자신에게 거인이 될만한 가치를 부여해선 안 된다. 아이디어의 가치는 눈 앞에 실현화된 이후에 측정한다.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들이 소송을 걸어 아이디어값을 챙길 수 있었던 이유는, 미친 주커버그가 혼자서 그걸 다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새로워 보이고 세상을 바꿀 거 같으면 일단 한 달을 기다려 봐야 한다. 시장에 나왔다면 다행히도 한 달을 날리지 않은 거고, 나오지 않았다면 리서치를 제대로 못했거나 가치가 없는 거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서비스는 사실 없다. 새로운 기술은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세상 유래 없는 기술력을 가졌다면 더 이상 안 읽어도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의 스타트업 시장을 주도해온 ‘해외 선례’를 ‘대한민국화’ 해서 성공하는 비즈니스는 IB, 컨설턴트 등의 경력자들이 인맥, 인프라, 돈으로 만들어낸 ‘대한민국 스타트업 Exit전략’의 영역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인생으로 쇼부쳐야

   극소수의 영역일지라도, 우리 중 누군가가 대한민국 스타트업 Exit전략의 핵심 인재일 수도 있고, 사실 처음부터 잘난 사람이 어디 있으며, 모든 성공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과정이다. 지금까지의 밑도 끝도 없이 비관적인 시각에 울컥했다면 그 억울함이 과정을 극복해 낼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창업, 경영, 스타트업, 기업가 정신, 창조, 등등 모든 그럴싸한 가치를 관통하는 것은 사실 ‘장사’다. 성공한 장사꾼은 자기 상품에 인생이 걸린다. 대기업 간 친구들 연봉이며, 인생의 불안정성이며,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외로움이라던지, 이딴 게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도록 ‘창업’, 그러니까 ‘업’의 ‘창조’를 향한 ‘열정’이 모든 걸 커버해야만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는 이야기다.

   하나같이 대학 나온 우리가, 요리에 미치지 않고 레시피 사업을 한다거나, 개발에 미치지 않고 기술 창업을 하려 한다면 어찌 될 지는 몰라도 분명 졸라게 힘들 것이다. 아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마르지 않는 돈줄과, 보이지 않는 손을 파.괴. 할 수 있는 연줄이 있다면야 이 글을 기억에서 지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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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취업’, ‘대기업’, ‘공무원’을 달성한 뒤에도 만사형통은 없다.

   우리세대 직장인들은 죄다 신음소리 연발 중이다. 사실 우리네 삶에서 모든 직업들은 ‘이미지’로 소비됐다. 패션이나 책처럼. ‘시크함’이라던가 ‘힙함’이라던가. 인스타그램에 커피 한잔, 그럴싸한 책 하나 얹어 찍은 사진들. 공부한다면서 노트 하나 펼쳐 놓고 찍은 사진들. 보여지기 위함과 보여져야 존재하는 ‘자존’이 설계한 이미지 소비 시장에서 ‘비극’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직업이다.

   TV에 비춰진 화려함으로 연예인을 꿈꾸는 연습생이 수 만명이다. ‘이미지’는 ‘부정’을 거르지만 ‘실상’을 외면한다. 잘 포장된 직업관에 힘들고 고됨은 포함되지 않으나, 이미지로 소비하기에 직업은 이미 평생의 ‘먹고 삶’이 걸린 고된 ‘노동’이자 ‘고역’이다.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지 않은가.

   취준생들 대다수가 한결같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있다. “내게 일이란 무엇이며, 평생을 함께 하고픈 직무가 무엇인가?” 거의 9할이 ‘노답’이거나 ‘노확신’이다. 대개는 애초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고 싶은 것’조차도 ‘이미지’로 공유되고 모두가 휩쓸린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누가 시키지 않거나 굳이 해야 하지 않아도, 심지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몸이 움직이는 일이다. 취업을 하려면 무조건 해야 하는 토익과 스터디, 부자가 되려고 해야 하는 창업은 애초에 논외다. 몸이 아닌 이미지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희망은 애초에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건 ‘적성’이 아니라 ‘허상’이다.

   창업한답시고 사무실에 모여서 하루 종일 게임하고, 취업한다고 스터디 모여서 농담 따먹다가 술먹고 위로하는 모임이 도처에 널렸다. ‘하고 싶은 일’이란 마치 섹시한 이성을 봤을 때 꼴리는 것과 같다. 이성적 판단과 저울질로 감당할 수 없는 ‘몸의 움직임’이 곧 ‘하고 싶음’의 기준이다. 부자가 되고 싶어 창업이 하고 싶다고, 대기업에 가고 싶어 직무를 하고 싶다고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

   사실 현 세대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20대가 다 가도록 뼛속까지 세뇌교육되느라 잃어버린 ‘직업관’이다. 그걸 찾지 못한 게, 우리 세대 보편이 대학가고, 스펙 쌓느라 흘려 보낸 ‘기회비용’이었다. 취업이든, 창업이든, 그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은 ‘무슨 일’이 ‘나의 일’인가에 대한 ‘탐색’이자 ‘개인’으로서의 자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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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와 전체주의에 의해 소멸되어온 ‘개인주의’ 그것이 하루 빨리 자리를 찾아야 한다.

   단기적 조각맞추기에 쏟아져온 모든 관심과, 노력, 세금들은 무엇을 일궈냈나. 그 모든 에너지가 청년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나가도록 ‘개인’을 찾는 ‘과정’과 ‘교육’에 모아지길 바란다. 그게 대한민국이 정 노답이라면 ‘K-Move’를 타고 해외로 탈출하는 발걸음일지언정. ‘알바’로 ‘달관’하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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