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세대론

by 2016-02-01

1. 어머니와 나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작은 습관이 있다. 20살 이래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왔지만 어머니와 밥을 먹거나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습관은 여지없이 고개를 든다. 어머니와 내가 겪는 인간과 사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는 것이다. 작게는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사소한 이슈들로 시작하여 크게는 국가나 세대의 정체성 또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에 이른다.

    당연하게도 57년생인 어머니의 사회와 89년생인 나의 사회는 많이 다르다. 어머니께서는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주역세대답게 가끔씩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한 것 같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약하다는 평가 뒤에 숨은, 아들 딸들에 대한 걱정과 굽어봄을 매번 느낀다. 나의 세대에 대한 어머니의 논평은 언제고 ‘나약함’과 ‘안타까운 환경’을 오가다 ‘그래도 어쩌겠니, 살아야지’로 귀결된다.

    나의 생각도 어머니와 비슷하지만 결론이 다르다.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시작해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룬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우리 세대는 단연코 풍요롭다. 그러나 20대를 보낼수록 나는 풍요 속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인지하게 된다. 군대를 갔다오고 취업문이 보이는 시기에 오니 그동안 쌓였던 생각들이 하나의 퍼즐처럼 모이기 시작한다. 강북 끄트머리의 20년 된 32평 전세 아파트 거실에 퍼지는 나의 목소리. 어머니는 전세세대고, 나는 월세세대인 것 같아요.

2. 전세의 기록

    어머니와 아버지는 88년 5월에 사립 고등학교 직장 동료로 만나 결혼했다. 아버지는 서른 하나, 어머니는 서른 둘이었다.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가고, 아버지가 살고 있던 사글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89년 6월에 내가 태어났고 어머니는 건강문제로 자연스럽게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사립학교 교원 생활을 그만두고 잠시 공산품 소매업을 했으나, 결국 1년 정도의 수험생활을 거쳐 경기도의 교육공무원(평교사)이 된다. 여기까지는 내 기억이 닿지 않는 곳이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부천에 있는 주공아파트에서 시작한다. 미취학 아동 시절일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 강서구의 주공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거기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낸다. 당시 어머니는 여름을 이용하여 레저용품 장사를 했다. 장사는 생각보다 잘 되었고, 서대문구의 신축아파트 청약도 당첨되었다.

    서대문구에서 2년을 보낸 후, 아버지 직장이 있는 일산의 빌라로 이사했다. 거기서 또 2년 정도를 보내고 옆 동네의 아파트로 옮겼다. 아파트에서 다시 3년을 살고 내 교육 문제 때문에 노원구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버지도 1년 후 노원과 가까운 의정부로 학교를 옮겼다. 노원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나는 독립했다. 현재 부모님은 노원의 20년 된 32평 아파트에 사신다. 5년 후 송파구의 아파트로 이사가는 것이 꿈이라고 하신다.

    사글세와 청약이 당첨된 서대문구의 아파트를 제외하면 부모님의 모든 주거형태는 전세다. 서대문구의 아파트는 현재 다른 가구가 전세를 살고 있다. 부모님이 지금 살고계시는 아파트의 전세금의 대부분은 서대문구 아파트 세입자의 전세금이다. 20년이 넘는 전세생활. 밥상머리에서 가끔씩 오고가는 부동산 관련 대화들은 대부분 전세가와 매매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은퇴를 5년 정도 남기신 부모님은 노년을 위한 송파구의 아파트가 전세 아닌 자가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Hyundai_i'park_apartment3. 전세세대

    전세세대는 대한민국의 압축성장을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이다. 전근대적 환경에서 태어나 근대를 거쳐 현대에 살고 있는 세대이며 근현대 성취의 주인공이다. 대략 50년대~60년대 출생자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전세제도의 주인공이었고 현재는 대부분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나의 나라’라는 전세세대의 인식은 이와 같은 요인에서 기인한다.

    전세세대가 ‘전세’와 ‘내 집’이라는 특질을 가질 수 있던 환경적 요인이 있다. 전세세대는 소비기회가 적고 소득기회가 많았다. 대한민국에 문화소비 지형이 제대로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인데, 이 때 이미 전세세대는 30대 이상으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소득기회가 많았다는 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성장 동력의 주인공이 전세세대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세세대의 소득은 사회의 파이가 제대로 분배되기 전부터 시작했다. ‘개룡’이나 ‘자수성가’가 용인되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환경적 요인 외에 사회문화적 요인도 존재한다. 전세세대의 낭만은 ‘잘 사는 것’에 있었다. 자가 주택과 단란한 가정이 상징하는 중류층 이상의 삶이 전세세대 삶의 지향이었다. 한 세대의 인간형은 그 부모세대에 의해 양가적으로 형성된다고 본다면, 전세세대의 부모가 물려준 지점들이 곧 전세세대의 인간형일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보면 월세세대의 인간형 또한 전세세대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월세세대에 대한 전세세대의 양가적 평가는 역으로 전세세대가 가지고 있는 양가성에 대한 평가가 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담론들의 생산 및 소비 주체는 전세세대이다. 문화예술 소비 지형의 발달로 월세세대를 위한 컨텐츠들이 유통되는 듯 보이지만, 월세세대의 소비는 대개 그들의 부모인 전세세대의 주머니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디어에 유통되는 청년담론과 노년담론 또한 내재적이기 보다는 외재적으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현재의 대한민국은 철저히 전세세대의 것이며, 전세세대가 납세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이상 이와 같은 현실은 변하기 어려워 보인다.

4.월세의 기록

    앞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스무 살 이래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왔다. 나와 부모님 사이에 정서적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어려서부터 ‘독립’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고, 나도 독립심이 강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스물부터 스물 하나까지의 독립은 독립이라 말하기 민망하지만 월세세대로서 나의 월세 기록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스무 살에 부모님과 떨어지게 된 이유는 재수 때문이었다. 나는 초-중-고 사교육비를 또래에 비해 상당히 적게 들인 편이다. 독립과 마찬가지로 사교육에 대한 부모님의 방침이 또래의 평균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재수를 결심했을 때, 그리고 서초동에 있는 학원이 너무 멀다는 이유로 자취를 원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큰 반대 없이 승낙해 주셨다.

    2008년 4월, 학원 근처의 옵션 괜찮은 고시원에 이사했으나 고시원보다는 원룸에 가까웠다. 7평 정도의 넉넉한 크기에 개인 화장실도 있으며 에어컨도 있었다. 보증금 100에 월세 40이이었다. 월세 장사가 엄청난 폭리라고 부모님을 불평하셨지만, 보증 100 월세 30짜리 방은 10만원 차이에 비해 환경이 많이 열악했다. 학사나 하숙의 경우에는 7-80만원 수준이었는데 이 또한 30만원 방과 시설이 비슷했다. 실제로 같은 건물의 30만원짜리 방에 사는 같은 반 친구가 종종 내 방의 화장실을 쓰곤 했다.

    부끄럽게도 재수 성적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원서도 다 떨어져 삼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집에서 독학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하셨다. 그러나 나는 자취를 계속하고 싶다는 욕심과 부모님께 더는 손을 벌리고 싶지 않다는 양심을 근거로 일자리를 구했다. 그렇게 5월까지 일하며 자취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나 수능이 다가오는 바람에 공부를 위해 부모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능을 친 다음 날 다시 나왔다.

    일단 부모님 집에서 나왔으나 당장 소득이 없었기에 잘 곳도 없었다. 그래서 잠자리가 제공되는 일을 했다. 한 달이 지나니 더는 잠자리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침 이혼하신 아버지와 둘이서 사는 친구가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친구 집에서 두 달 정도를 있었는데, 다시 나올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 두 달 사이 지금 다니는 대학에 합격하긴 했으나, 다른 대학 추가 합격을 기다리는 상황이어서 과외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해보니 신림동에 있는 친구가 자신의 친구가 자취방을 2주정도 비웠다고 했다. 평소에 이름만 듣고 안면조차 없는 친구였지만 흔쾌히 2주간 방을 빌려주었다. 신림동 골목길을 굽이굽이 들어가야 있는 자그마한 다세대주택의 옥탑이었다. 보증 200에 월세 35라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니 다른 대학에 최종 불합격한 것을 알게 되었다. 입학식에 참석하고 며칠 후, 2주간의 월세로 라면과 물을 각각 한 박스씩 두고 나왔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부모님의 지원이 없으면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자취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취하는 친구들의 자취방을 전전했다. 보증금도 없었고, 과외가 생활비 수준으로 밖에 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학교 기숙사 추가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이거다 싶은 마음에 부모님께 200의 보증금을 지원해주실 수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다행히 부모님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내가  안타까우셨던지, 기숙사비까지 내주신다고 하셨다.

    기숙사비는 보증 200에 식대를 포함하여 월 60으로 기억한다. 기숙사는 2인실이었고 시설이 깔끔한 편이었다. 2층 침대와 화장실, 에어컨이 있었다. 당시 식대가 20이었고 시설 이용료가 40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80만원 값은 못하는 방이다. 처음 보는 룸메이트와 방을 같이 쓰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몇 달이 지나 과 동기와 같은 방으로 신청했으나 기숙사의 규칙을 위반해 결국 기숙사를 나와야만 했다.

    기숙사에서 나온 후 한 달 정도 학교 근처의 고시원에서 머물렀다. 두 번째 고시원 생활이었지만 이 고시원은 스무 살 때 살았던 고시원보다 훨씬 열악했다. 개인 화장실은 있었지만 방이 정말 좁았다. 싱글 사이즈 침대와 학교 책상 외의 공간은 사람 하나 누울 자리가 전부였다. 그리고 중앙냉방 시스템이었는데, 에어컨을 하루에 두 시간 밖에 틀어주지 않았다. 낮에는 가급적이면 밖에서 지내는 것으로 버텼지만, 밤에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더위를 떠나서 중앙냉방 시스템을 통해 모기가 끝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보증 100에 월세 35를 받았다.

    결국 한 달을 겨우 채우고 과 동기와 원룸을 구해 같이 살게 되었다. 신촌의 모텔 밀집지역 사이에 덩그러니 자리한 원룸이었다. 6평 정도에 보증 500에 월세 50. 보증은 동기가 내고 월세를 내가 30 내기로 했다. 방이 좁았음에도 화장실에 욕조가 있었다는 점, 가스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모텔을 개조해서 원룸장사를 한 게 아닐까 싶다. 1년 정도 살다가 동기의 입대 때문에 방을 내놓게 되었다. 마침 운 좋게 부모님께 약간의 목돈이 생겨서 제대로 된 원룸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학교 남문 근처에 있는 8평 크기의 보증 1000 월세 50짜리 방이었다. 그러나 스무 살에 살았던 고시원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월세가 너무 비싸다고 하셨다. 보증 좀 올리고 월세 더 얹으면 아파트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불평하셨으나, 그 정도의 돈이 없음을 어머니도 나도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사람답게 살만한 방이었다. 이 곳에서 8개월 정도를 더 산 후, 2012년 3월에 입대했다.

    2014년 2월, 의무소방으로 23개월의 복무를 마친 나는 다시 자취방을 구하러 학교 주변을 돌아다닌다. 10대 시절부터 얘기한 대로, 부모님께서 결혼 자금 대신 2000의 보증금을 주셨기 때문이다. 2000을 받으면서, 취업하게 되면 1000정도 더 얹어서 오피스텔이나 작은 아파트 보증금으로 쓰는 대신 결혼 비용은 일체 지원받지 않기로 부모님과 약속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방은 11평 정도에 보증 2000 월세 45짜리다. 지은 지 20년 정도 된 건물이어서 월세가 싼 편이다. 신축의 냄새가 나는 이 정도의 방이면 실질적으로 월세를 60은 줘야함을 알기에, 건물이 낡은데서 오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잘 살고 있다.

    월세 생활의 일등 공신은 과외였다. 운 좋게도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과외로 평균 월 150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때에 따라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해 줄 수 있던 부모님의 경제적 여유도 월세 생활의 큰 기둥이었다. 약간은 바보같은 이유로 시작한 월세 생활이었지만 몇 년을 이어가니 약간의 노하우도 생겼다. 그러나 졸업과 취업이 가까워져오는 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간 쓴 월세가 2000만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월세는 ‘사라지는 돈’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철저히 나의 선택이었기에 아쉬운 말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평생을 월세로 살아야 한다고 상상한다면 막막함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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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월세세대

    월세세대는 80년대와 90년대 혹은 그 이후 출생이다. 월세세대는 저성장 시대를 살고 있다. 월세세대에게 전근대와 근대의 사회는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전세세대의 성취를 상대적으로 당연하게 인지한다. 부모 밑에 살지 않는 이상 전세를 경험할 확률이 희박하며 자가 주택에 대한 기대도 없다. 한국 사회에 대한 소속감이 상대적으로 약하며, 해외와 심정적으로 가깝다.

    월세세대는 소비 정보와 소비 기회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비 행위와 소비 의식이 상당 부분 평준화 되어있다. 사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적고, 대학에 가지 못한 경우가 적으며, 상당수가 해외여행을 다닌다. 반면 소득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다. 사회의 파이는 이미 얼추 분배가 완료된 상황이고, 실질적인 소득 기회는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사회 경제적 역량을 따라간다.

    월세세대의 구체적인 낭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월세세대는 전세세대의 당위들을 거부한다. 자가 주택과 단란한 가정의 꿈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는 전세세대 모델의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란한 가정’ 뒤에 가려진 부정적인 면모를 상당 부분 학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정이 성립하기 위한 공간적 조건이 바로 집인데, 가정을 꾸리는 것의 효용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인식이 월세세대 사이에 통용되고 있다.

    월세세대는 저금리 시대를 살고 있기에 저축이 의미가 없다. 과거의 부동산같은 뚜렷한 재테크 대상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월세세대의 현재 소비력은 미미하고 기대 소비력도 고령사회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상태다. IMF를 제외하고 가장 취업이 어려운 세대라는 이야기는 이미 정설이 되었다. 월세세대가 낭만이 부재하는 이유는, 결국 전세세대가 설정한 당위들의 해체와 미래소득 불안에 있지 않을까.

6. 월세세대는 왜 괴로운 것일까?

    전세세대가 월세세대의 괴로움을 배부른 투정으로 깎아내리는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는 이미 ‘3포세대’, ‘절망세대’ 등의 표현으로 월세세대의 괴로움을 조명하고 있다. 월세세대는 대체 왜 괴로운 것일까? 월세세대의 괴로움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월세세대가 괴로운 원인의 실마리를 세대 변화에 따른 시민상의 변화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전세세대가 설정한 1등 시민의 조건은 크게 국방, 납세, 출산이다. 4,50대 ‘군필(남성)’, ‘직장인/자영업/전문직’, ‘가장’이 곧 1등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세대에서 가장 보편적 차별담론인 여성차별, 저소득자 차별, 미혼 차별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전세세대는 병역, 납세, 출산의 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2, 3, 4등 시민으로 밀려났다. 의무들은 이행의 과정에서 반론이나 이의가 용인되기 어려웠다.

    병역은 여권신장으로 무너졌다. 여성주의 담론에서 무수히 지적했듯 여성에 대한 2등 시민적 시각은 전세세대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월세세대는 역차별 담론이 존재할 만큼 ‘여성=2등 시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전세세대가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들은 대부분 군대의 유사체이다. 반면 월세세대는 사회 시스템이 군대의 ‘합리적 비합리성’에서 벗어나길 희망한다. 병역의 의무는 더 이상 신성하지 않고 병역을 피한 자들이 외려 특등 시민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출산은 집값 폭등과 결혼 해체 현상으로 붕괴되었다. 전세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이야’라는 말이 유행하듯, 전세세대의 결혼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전세세대의 실패한 결혼을 학습한 월세세대는 결혼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무엇이 아니라 그 뿌리가 사회적 계약관계에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불어 결혼에서 가장 핵심적인 비용인 집값의 폭등 또한 결혼의 매력을 감소시켰다. 그 결과 월세세대 중 일부는 결혼에 환상을 가진 또래를 조소한다.

    ‘전세세대 1등 시민’의 3대 의무 중 여전히 공고한 것은 납세이다. 납세의 의무가 무너진다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 이상의 소득과 그것이 보장하는 중류층 이상의 삶에 대한 가치부여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현재 대부분의 저성장 선진국들은 병역, 납세, 출산에 대한 가치부여가 무너진 상태이다. 군대를 가지 않아도, 특정 직업군에서 일정 이상의 소득을 올리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출산하지 않아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월세세대가 괴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월세세대는 여전히 ‘납세의 의무’가 상징하는 단편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기에 괴롭다. 납세의 의무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대학진학률/물가/최저임금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진학률이 높은 까닭에 누구나 (대기업 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중류층 이상의 삶을 꿈꾸고 있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2등 시민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현실이 고물가 저임금이다. 취업에 실패한 월세세대는 스스로를 시민조차 되지 못한 무적자라고 조소한다. 취업에 성공한 월세세대조차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멀리하며 1등 시민 되기를 거부한다.

    월세세대의 괴로움이 계속되면 납세의 의무마저 무너지게 되지 않을까. 1등 시민이 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월세세대에게 남은 선택은 시민 등급을 해체하고 개인주의적 인간형으로 변화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삶의 태도가 변한다고 월세세대의 괴로움이 없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월세세대의 의식 변화는 현실의 변화에 따른 방어적 태세전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7. 전세세대의 노후 : 부동산과 막연함

    전세세대가 은퇴 이후 그리는 보편적인 노후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개의 경우 노부부 둘이 살기에 부족하지 않은 아파트와 연금으로 부족한 현금을 조달할만한 소일거리를 전제한다. 노후상에서 알 수 있듯 전세세대의 노후는 현금화가 어려운 부동산에 상당한 지분을 할애한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매매건수는 급락했고 현재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다양한 부양 정책에도 불과하고 얼어붙어있으며 매매활성화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다. 매매건수의 급락은 부동산 매매가 전세세대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월세세대는 부동산을 살 돈이 없다. 게다가 전세세대의 노후 현금을 일정부분 책임질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수술대에 올랐다.

    전세세대의 노후상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대부분의 전세세대는 부동산 외 소득으로 100만원 이상을 충당하기 어렵다. 만약 전세세대의 노후생활에 월 200만원이 필요하다 가정한다면 남은 100만원은 어디서 올까. 어쩔 수 없이 아파트 평수를 줄여가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부동산 매매는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집값 폭등을 불러온 활발한 부동산 매매는 미래소득이 충분히 남은 전세세대끼리의 거래였다. 하지만 월세세대와 마찬가지로 미래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매매가 성사되기 어렵다.  결국 앞으로의 부동산 매매는 미래소득을 다 써버린 전세세대와 미래소득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며 ‘출산의 의무(결혼의 의무, 내 집 마련의 의무)가 해체된 월세세대 사이에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월세세대는 부동산을 투자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결과 대한민국 국민 중 10명 중 8명이 집값이 비싸다고 대답했다. 2014년 4/4분기 서울 평균 아파트 값이 5억이다. 월세세대에게 5억은, 결혼과 출산 없이 검소하게 20년 이상을 모아야 얻을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아파트의 효용이 현재 인간의 노동 가능 기간인 30년 내내 모아야 할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월세세대는 이미 알고 있다. 월세세대의 정보 접근성은 결혼제도와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으로 대변되는 전세세대식 당위의 해체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가격이 효용에 비해 높으므로, 결국엔 떨어질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일의 경우 집값이 폭락한다면 전세세대의 가계경제는 붕괴하고 국가경제가 주저앉는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정부는 부동산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연착륙에 걸리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긴 어렵지만, 월세세대의 구매력과 전세세대의 판매수요가 만나는 시기가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 월세세대는 전세세대에 비해 인구도 적고 구매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세세대가 현금화를 위해 부동산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질병 때문에 당장 목돈이 필요하거나, 노후자금으로 준비한 현금이 동났는데 부동산이 안 팔린다면? 전세세대가 찾을 곳은 은행이다.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할텐데, 전세세대의 주택담보대출 수요를 시중 은행이 전부 수용할 수 없다. 수도권 아파트 담보대출 수요 총량이 민간 은행과 정부의 역량을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아파트의 상당수가 대출을 끼고 있으며 정부가 대출 수요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과 같은 해외 거대자본이 개입해서 역모기지 상품을 팔게 된다면, 재앙이 시작된다. 수도권 아파트가 이미 포화여서 새로운 공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급이 한정된 재화를 누군가 독점하게 된다면 큰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중국계 자본처럼 정부의 개입이 어려운 대상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수도권 아파트의 한정된 공급량을 토대로 부동산 공급을 월세형으로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예측일수도 있지만, 월세세대가 평생 중국계 자본에게 월세만 바치다가 제 집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러한 정황을 미루어본다면 전세세대의 노후상은 결국 월세세대에 대한 고려 없이 형성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전세세대의 노후와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여전히 타자화된 시각에서 다루어진다. 심지어 전세세대의 노후상은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노인빈곤률 또한 고려하고 있지 않다. 전세세대는 자신의 노후가 파지줍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3040년생들처럼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신감의 원천은 아무래도 압축성장의 성공서사와 본인 명의의 아파트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세세대는 현재 아파트의 가치가 상당히 고평가되어있다는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들의 노후를 월세세대에 빚져야 한다는 점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8. 세대전쟁

    ‘386 개새끼론’은 이미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유통되는 담론이다. 베이비부머부터 시작해 포스트386을 거쳐 20대까지 사회-경제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386 무임승차론’으로 각자의 분노를 해소한다. ‘386 무임승차론’은 결국 386의 사회경제적 공헌도가 낮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만약 베이비부머가 누리는 혜택이 그들의 공헌도보다 낮다는 인식이 퍼졌다면 세대 간 대립지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월세세대의 괴로움엔 전세세대의 책임이 존재한다. 전세세대는 월세세대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전세세대는 월세세대를 나약하다 말하지만, 동시에 ‘제 자식’의 일이기에 전세세대가 만든 환경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하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격동의 50년을 이끌어낸 성장모델은 이미 그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고 있다. 정치체제는 87년 선언에서, 경제체제는 97년 imf로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전세세대가 만든 환경인 동시에, 월세세대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다. 월세세대는 생명력이 꺼져가는 체제에서 살아온 것이다.

    한국사회는 길게는 30년, 짧게는 20년 동안 새로운 동력을 개발하지 못한 채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전세세대는 현재 자녀는 아니지만, 자녀의 친구인, 결국엔 자녀일 수도 있는 월세세대를 밟고 서있다. 다만 월세세대가 아직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전세세대와 월세세대의 관계, 그리고 그 모순에서 오는 부정적 감정들이 쌓인다면 ‘386 개새끼론’으로 대변되는 세대갈등을 넘어서 2030-5060의 세대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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