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승리’가 아니라 ‘서비스’로서의 ‘혁신’을 원한다.

by 2016-04-14

올해 서른인 내 인생의 첫 선거는 2007년 겨울, 군 복무 중 참여했던 17대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내가 있던 포항은, 동향 출신이던 이명박 후보를 제외하면 그 어떤 후보에게서도 투표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본 선거는 2010년 5회차 지방선거였다. 나는 경기도에 거주하지 않았으나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김문수를 좋아했다. 그는 누구보다 공약 이행률이 높은 정치인이었다.

1987년생인 내 인생에 민주화 운동은 없었고, 그러다보니 호남 지역과 운동권들에 대한 부채의식도 있을 리가 없었다.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대를 이은 박통에 투영되는 산업화와 애국정신에 대한 경험 역시 부모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것을 나와는 상관 없는 영역으로 교육해준 가정에서 자랐다. 나는 4년제 대졸 엘리트들의 사회안착이 무너지는 시대를 자랐고, 서비스 창업으로 살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소소하게나마 정책제안그룹을 운영한다.

 

기껏해야 시장에서 열심히 굴러온 내가 정치를 잘 알리가 없지만, 정책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정치도 서비스다.”라는 믿음이자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난 겨우 2010년부터 쳐다봤고, 애초에 식견과 삶의 여정이 깊지 않기에, 한국의 정치를 ‘지역주의’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다. 대신 지인들에게 항상 ‘시장’과 ‘서비스’에 비유해서 아쉬움을 토로해왔다.

어떻게 모든 선거에서 ‘정책’이 외면될 수가 있나. 거의 ‘통신시장’과 흡사하지 않냐. 2년 약정으로 덜컥 덜컥 계약하면서, 통신 서비스의 개선과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 혁신은 외면한 채, 갤럭시니 아이폰이니, 삼성빠니 애플빠니, 핸드폰에만 집착한다. 핸드폰 자체의 기능성이나 정치인 후보 자체의 인물도 중요하긴 한데, 통신 서비스나 정치 서비스의 핵심은 ‘정책’ 아닌가. 그나마 통신망 사업자들은 3사가 경쟁하는데, 정치는 2당이니 말 다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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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정당 별 의석 수

그렇기에 이번 총선 결과는 향후 ‘정치 서비스’에 대한 내 기대치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킨다. 물론 애초에 별 기대가 없었기에 증가폭이 높은 것도 있다. 아무튼 4년약정 정치 서비스 현장에서 사실상 소비자의 권익 자체를 가장 세게 짓누르던 박통과 노통의 시장파괴가 많이 사라졌다. 지역주의 기반 불합리한 소비자 선택도 개선의 여지가 보였다. 더하여 3당구도로 선택지와 경쟁구도 역시 넓어졌다.

나는 기독자유당의 공약 모두를 반대하지만, 그들이 기독교 신자라는 소비자에게 정책 서비스적 약속으로 가장 예상치 못했던 선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앞으로도, 어느 당이건간에 정책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정치 서비스의 질을 높이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통신망 시장에서 사용자 주도에 의한 혁신을 불러 일으켰던 ‘뽐뿌’같은 서비스도 정치 영역에 등장하길 바란다.

민주화

20대 총선에서 민주적으로 선거가 이뤄지지 않은 곳은 없다.

그리고 가장 시급히 사라지길 바라는 것은 ‘서울과 수도권이 민주화의 성지였다’같은 이야기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적으로 투표가 이뤄지지 않은 곳은 없다. 그리고 암울한 회색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에 새로운 성지를 찾는 방법은, ‘민주화’도 아니고 ‘산업화’도 아니고, 정치 그 자체의 ‘서비스’적 ‘혁신’이다.

세상의 모든 서비스는 소비자의 까다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경쟁을 통해 발전해 왔다. 앞으로를 밝혀나갈 주체는 ‘위대한 시민’도 아니고, ‘애국적 국민’도 아니고 살얼음판 저성장 고령화 사회에서 세금을 내고 서비스를 누릴 자격이 있는 ‘소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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