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丙申)과 머저리

by 2016-02-08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진부한 서두다. 입춘을 기준으로 아직은 을미년임에도, 우린 지난 연말부터 이미 이것에 대해 떠들어 왔다. 그래서 더 진부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다가올 신년의 육십갑자식 이름을 무심코 따져보고는, 피식 웃기도 민망한 [동음이의]를 발견해버린 순간의 기억이 저마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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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뉴스 앵커에게 닥친 얄궂은 숙명을 떠올리고 즐거워했을지 모른다. 부러 들뜬 목소리로 힘차게 외치던 진행자가 슬슬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방송사고까지 내고 마는 상상 따위를 하면서 말이다. 이때에 ‘병신년’이 자아내는 우스꽝스러움은 특정 단어의 우스움에 기인한다기보다, 말놀이(pun)가 발화되는 배경과 맥락에 의한 것이다. 목 끝까지 단정하게 잠가둔 셔츠 단추가 툭 떨어지듯, 유난스레 또박또박 구사되는 ‘현대 서울말’의 표준발음사이로 비속어가 터져 나오는 상황은 권위적 엄숙주의에 반항하는 풍자성을 슬쩍 내보여 ‘낡은 서판’을 부수는 희극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누군가는 말장난에 상처받을 사람의 마음을 염려한다.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내지는 인격모독의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위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않는 정치적 올바름이 온전히 고려된 상태의 욕설이란 게 과연 성립가능할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염려의 내막은 짐작이 된다. 공교로운 때를 틈타 쉽게 해당 낱말이 남용, 남발되는 것을 경계하는 방어적 정의감을 이해한다. 평소 자신의 의식을 점검하여 스스로 주의하고자 하는 결심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반응 차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로만 야콥슨은 의사소통행위의 구성요소 여섯 가지를 모델화하였다. 우선 발신자, 수신자, 메시지가 있다. 문학읽기도 의사소통행위의 일종이므로 이 프레임에 따르자면 발신자인 작가와 수신자인 독자 사이에 놓인 전언이 텍스트가 된다. 상황, 접촉, 약호가 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객관적 현실상황 안에서 벌어진다. 접촉채널로서의 매체나, 공유된 의미체계로서의 약호도 중요한 요소다. 전언 자체보다 메시지를 둘러싼 외재적 항목들 간 힘자랑의 비중이 더 큰 것이다. 따라서 ‘병신’의 사전적 정의를 전제해두거나, 병(丙)과 신(申)이 십간십이지에서 어떤 음양오행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려는 접근 등은 약호를 통일시켜 혼동을 줄여보려는 메타언어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구성요소들에 영향받지 않고, 메시지의 형식성과 내재성만을 오롯이 강조하는 언어기능의 측면도 있다. 야콥슨은 이를 심미적 또는 시적 기능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우린 차마 ‘병신’에게서 심미적이고 시적인 기능까지는 찾아내지 못한 셈인데,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발표된 이청준의 단편소설 병신과 머저리에는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의 일상적 관계를 깨뜨리고 새 의미와 독립성을 허가받은, [미학적으로 낯선 ‘병신’]이 등장한다.

병신과 머저리는 각각 ‘병신’과 ‘머저리’를 표상하는 형제의 예술창작기이다. 형은 소설을 쓰고 동생은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은 서로의 작업에 경쟁적으로 침투하기도 한다. 형은 6·25전상자로서 끔찍한 실존적 고통을 감내해왔으며, 특히 김 일병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선명한 죄의식을 어떻게든 물리치고자 자기치유의 일환으로 소설쓰기를 추동해나가는 인물이다. 형의 직업이 몸(身)의 병(病)을 고치는 의사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동생은 화실을 운영하는 ‘졸때기 미술학도’로서 절실한 물리적 체험없이 관념적 고통에 빠진 채 무기력하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룸펜 인텔리에서 2000년대의 인터넷 잉여 니트족으로 이어지는 인간형의 계보 한 자리를 꿰찬 듯 보이는 머저리 동생은 끝내 그림 속 얼굴을 완성해내지 못하지만, 알고보면 소설의 바깥액자를 관장하는 1인칭 서술자 ‘나’는 형이 아니라 동생이다. 병은 살아있음의 증상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소설 속 ‘나’는 말한다. “나의 아픔은 어디서 온 것일까. 환부가 없으니 아픔도 없어야 한다면, 내가 엄살을 부린다는 말인가. 나의 아픔 가운데에는 형에게서처럼 명료한 얼굴이 없었다.”

우리는 명료하게 아프지 못해 명료하게 살아 있지도 못했던 것일까. 새해를 맞이하고도 백지공포증을 앓는 병신년 머저리들의 과업은 무엇일까. 제 몫의 화폭 앞에 의자를 당겨 앉아 구상해볼 일이다. 그저 사고처럼 주어진 집단적 환란과 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오롯한 일념 하나로 거울도 보지 못하고 달려온 형들은 한 번도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는 자화상을 우리가 그려야 한다.

※ 이 글은 <중도일보> 2016년 1월 5일자 지면에 게재된 필자의 글을 조금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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